월요일, 7월 30, 2007

샘가

돈나물

감덕과 산과 안개


사진에 이름을 붙히는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냥, 감덕과 산과 안개가 있으니 그리 지을련다.
편한 사진으로 남겨둔다.

시골 냇가 #3


좀 어둡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을것 같아서 후보정은 하지 않았다.

어떤, 사진작가의 말을 따르자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게 사진이고 리터칭을 하면 새로운것을 창조하는것이라 했던것 같다.

시골 냇가 #2

시골집 냇가


시골집 냇가...

어렸을때, 채 지하수 펌프를 놓기전이니 아마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시절인것 같다.

밥을 하거나, 쇠죽을 끓이거나 여튼 물이 필요하면 항상 이 냇가로 가서 물을 길어야 했다.
어찌나 하기 싫은 일이던지...

그땐, 이렇게 아름다운것인 줄 몰랐던것 같다.. 그저 물 심부름에 입만 나왔던것 같다..ㅎㅎ

더운 날씨에 시원함을 느낄수 있어서 참 좋다.

잘 기억나지 않는 꽃 한송이


자헌이 백일에 시골집 앞마당 한켠에 피어있던 꽃이다.

꽃 이름은 기억나면 다시 올리기로 하고... ^^

외할아버지의 자헌이 사랑


무뚝뚝해보이시는 자헌이 외할아버지....

잘 몰랐다는게 맞을것이다. 속정이 깊으신 아버님의 손자 사랑을...

자헌아~ 외할아버지 좋아?^^

가족들에게 많은 사랑 받으며서 잘 크길 바란다.

백일


일 백일!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벌써 백일이다.

예전 먹을것 부족하고 의료시설이 좋지 않았을때는 백일에도 잔치를 할정도로 중요한 날이었지만, 지금은 백일 기념사진외엔 마땅히 해줄만한게 없다.

고민하던차에 다행히도, 아내가 마련한 풍선을 불어 꽃을 만들어, 천정에 매달고 플래카드를 달았다. 나름 백일 분위기가 난다.

대전 부모님을 모시고 조촐한 가족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플래카드와 꽃 풍선은 시골까지 가지고 가서 행사를 했다..ㅋㅋ

화려한 잔치는 아니지만, 가족들의 정성이 담긴 백일을 보냈다.

자헌아, 튼튼하고 사랑스럽게 자라다오..^^

토요일, 7월 28, 2007

선운사 입구의 개천

선운사 초입


아버님 생신을 맞아서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하던중 차라리 조금 먼곳으로 가보는게 나을듯해서, 전북 고창의 선운사를 찾았다.. 가는 김에 소문 자자한 장어집에 들러 풍천 장어도 먹을 요량으로.. 비록 장어가 회로 바뀌긴 했지만, 간만의 외출에 기분이 밝아진다.
사진은 선운사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

기차가 들어오는 풍경


저녁무렵 어둠이 깔리는 기찻길에 갖가지 사연을 안은 여행객들을 태운 기차가 들어옵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심상찮은 구름


아파트 복도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오늘따라 심상찮아서...

공주가는 길에 수목원을 찾아서


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 공주가는길의 수목원에서...
한참 열기가 오르는 한낮에 이곳 저곳 구경하는게 쉽지만은 않아서.. 잠시 쉬고 있는 틈에..

축구선수 ^^


벌써부터 공을 끼고 잡는 포즈가 예사롭지 않네..


우리 자헌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다슬기


어렸을적 전라도 시골에선 대수리라고 불렀던 다슬기...

된장풀고 삶아 놓은 다슬기를 옹기 종기 모여앉아 까먹는 재미란 ㅎㅎ

죽순의 내면


겉은 거칠 거칠하고 못생겼지만, 속살만은...

자연의 색감은 그 무었도 흉내낼수 없다는....

고추꽃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면서, 부끄럽게 피어난 고추꽃입니다.

감자꽃


텃밭에 있는 감자꽃
옅은 보라색의 수수한 감자꽃이 아름답습니다.

시골 옆산 한컷


약간 어둡긴 하지만, 하늘이 아름다워서...

화요일, 7월 10, 2007

IT맨 이야기

IT를 시작한지 10년이란 시간이 지나가면서 느껴왔던것들이 어느 IT맨이 쓴 글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다.

난 IT에서 왜 일하고 있는지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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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IT를 그만둔 이유...

참 오랜 동안 프로그래머라는 직종에 있었던 것 같다.

2000년 큰 꿈을 안고 신입 프로그래머로 첫 직장에 취직을 했다.

그때가 20대 초반의 7월. 그땐 직장에서 날밤 새면서 프로그램 짜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멋져 보였다. 어디서부터 만들어진 선입관인지 모르지만 그게 진정한 프로그래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한달 풀출근하고 추석도 출근하래서 안나갔더니 원청 대기업의 수석이 우리 회사 사장한데 업무 비협조라고 시말서 쓰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뭘 만들길 좋아해서인지 내손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납품한다는 생각에 2~3달 동안 매일 2~3시간씩만 자면서 개발을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워했고. 난 이런 거 개발한다고 좋아했다.

그 회사엔 기숙사가 있었는데, 출퇴근하는 나에게 왜 기숙사에 안들어오냐고 했다. 그땐 그냥 별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이번엔 서버 쪽 개발이었다. 메신저 서버 개발이었는데, 첨 들어가자마자 2달 만에 완성하란다. 개발자는 단 두 명.

그때 난 개발이 다 그렇지 했다.

이번에 모바일 회사에 들어갔다. 입사 첫날 밤 11시 퇴근을 했다. 1년 동안 일요일 쉰 게 손가락에 꼽는다. 어쩌다 사무실 공사로 6시 퇴근을 하니 적응이 안 되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퇴근은 매일 밤 10시가 넘었다.

2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국내 최고의 대기업 외주 업체로 폰을 만들러 미국 출장을 갔다. 아침 9시 출근 밤 12시 퇴근이 정해졌다. 일주일에 하루는 완전 날밤 샜는데, 그런 날은 아침 7시 퇴근해서 오후 3시 출근했다. 휴일은 한달에 하루. 빨래할 시간도 안준다.

그런데 바뀐 갑의 담당자 왈 "디자인 다시 하고 서비스기획 다시 하죠" 자기들이 컨펌한걸 다시 하란다. 그리고 그 지옥같은 일정이 다시 한달 반복되었다.

재작년 이 회사 폰파트에 입사한 선배에게 전화 해보니 전화 할 때마다 회사 침실이다. 중국 출장 갔다고 해서 연락해보니, 중국에서도 그런 식으로 일하고 있다.

한달 풀출근하고 추석도 출근하래서 안나갔더니 원청 대기업의 수석이 우리 회사 사장한데 업무 비협조라고 시말서 쓰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 3년간, 이동통신회사 블로그 서비스를 싹 다 모바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처음 프로그램을 만들 땐 2주 동안 집에 3일만 갔다. 그것도 옷 갈아입으러. 그리고 사무실에서 날밤의 연속. 그렇게 1차, 2차, 또 다른 프로그램. 사무실 인근에 여관방을 잡아놓고 새벽 4시 퇴근 9시 출근했다. 당연히 주말은 없다. 3달짜리 프로젝트를 하루도 안 쉬고 4시간 자며 했더니 겨우 테스트 일정에 맞춰 개발했다.

그런데 바뀐 갑의 담당자 왈 "디자인 다시 하고 서비스기획 다시 하죠" 자기들이 컨펌한걸 다시 하란다. 그리고 그 지옥같은 일정이 다시 한달 반복되었다.

이젠 지겹다. 그래서 사표 던졌다.

도데체가 왜 프로젝트는 항상 급한 건지. 왜 항상 일정은 왜 반도 안 주는 건지. 왜 10명이 개발할 거를 세 명이 개발하는 건지. 왜 당연히 야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일정에 왜 당연히 야근이 들어가는 건지. 왜 주말, 국경일이 존재 하지 않는 건지. 회사 사규에 "회사가 주말출근과 야근을 요구할시 직원은 흔쾌히 동의한다."라는 게 왜 있는 건지.

내가 PL로 일하면서 프로젝트를 겨우 겨우 잘 맞춰서 6시 칼퇴근을 몇 번 했는데 그 다음 연봉협상 할 때 "그때 별로 힘들게 일안했자나?" 라고 한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이란 건가. 일을 어떻게 하든 야근하는 직원은 연봉이 오르고 시간 내에 마치고 일찍 가면 인정 받지 못한다. 야근 수당이나 주말 출근 수당은 회사 사정상 줄 수 없다 하고 추가로 근무한 시간을 평일대체가 된다거나 하는 것도 없다. 결국 개발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래를 바라보고 주식시장 상장을 바라보고 일하라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상장했다고 해서 과연 날밤 샌 직원들에겐 뭐가 돌아오겠나. 장담 할 수 없다.

요즘 개발자가 금값이라 개발자 구하기 힘들다. 6 명이 할 프로젝트를 2명이 하게 되었다. 사람을 뽑아 달라고 하니, 면접보곤 쓸만한 개발자에게 터무니없는 연봉을 제시한다. 결국 개발자 구하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렸다. 그러고선 개발 일정 못 맞춘다고 닥달한다. 개발자 몸값이 올라갔으면 그만큼 올려서 구해야 하는데 이놈의 연봉 수준은 몇 년전 수준 그대로다. 연봉 몇 백 더 주고 몇 억짜리 프로젝트일정을 맞추는 게 중요한 건지 몇 백을 아끼는 게 중요한 건지, 간부들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있다.

개발자들이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는 거 보고 프랑스 사람이 노동부에 신고를 해서 프랑스 노동부가 영업정지를 내려, 아예 법인을 해체하고 다른 나라로 옮겼다고 한다.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 c/C++ 8년차가 되었다.

내 위에 중년을 바라보는 개발자들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새벽 퇴근과 날밤새기 주말 출근을 당연히 받아 들이며 살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들은 이제 야근을 즐기고 있는 거 같다. 그냥 그런 문화에 젖어서 오히려 야근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을 ‘부적응자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난 TV나 신문에서 한국의 남편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사 노동 참여 시간이 적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막 화가 난다.

독일 9시전 출근 3시 퇴근이다.

미국 9시 출근 5시 퇴근이다.

호주 4시반이면 짐 싼다.

캐나다 영국 별반 틀리지 않다.

내가 아는 개발자들 대부분은 한달에 야근 안하고 퇴근 하는 날이 손꼽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개발을 하고, 가사노동에 참여한단 말인가? 홍길동의 분신술을 익혀야 하나?

모바일 프로그래머 마지막 연봉은 4천만원 가까이 되었다. 퇴사하기 얼마 전엔 모 회사로부터 4,500만원의 연봉을 제시 받았다. 제법 큰 회사였고 안정된 회사였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직원 한 명이 퇴사해서 새로 사람을 구하는 거였는데, 바로 그 퇴사한 직원과 업무를 같이 할 기회가 있어 회사사정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회사에서 9시 출근해서 밤 12시 퇴근했다고 한다. 한달에 이틀 쉬었는데, 그 휴일마저도 건너뛰기 일쑤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와 기타 국경일 모두 다 출근했고, 설날도 하루만 쉬었다고 한다.

4,500 만원? 5,000, 6,000을 줘도 안 간다.

시간만 축나는 게 아니라. 건강과 젊음까지 갉아 먹는다. 그렇게 일하다 난 매달 약을 먹어야 하는 알러지성 폐질환까지 얻었고 내 뒤에서 쟤는 왜 저렇게 빌빌대고 혼자 일찍 퇴근 하냐는 임원들의 수근거림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기도 했다. 결국 그런 노동환경에서 나 말고도 건강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는데도 다른 건강한 사람들도 있지 않냐며 모른척 한다. 공기 청정기 하나 놔주지 않는다. 이게 한국의 IT 회사다.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꿈꾸는 6시 퇴근, 주 3일 영어학원, 아내와 아들과 저녁식사, 주말에 운동, 가족과 나들이. 한국에서 IT 개발자로 있는 한 그건 꿈이다. 꿈.

8 년만에 휴식으로 아침에 약수터 도서관 책보기, 저녁엔 농구, 가족과 식사 아들과 놀아주기 같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있다. 당연히 회사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난 이게 너무나 감사하다.

몇 년전 프랑스의 한국대기업 현지 법인이 사라졌다고 한다. 개발자들이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는 거 보고 프랑스 사람이 노동부에 신고를 해서 프랑스 노동부가 영업정지를 내려, 아예 법인을 해체하고 다른 나라로 옮겼다고 한다.

미국출장 시 갑자기 출근하지 않고 호텔에서도 사라진 개발자가 메신저로 로그인을 사직서를 제출한 일도 있다. 어느 여 개발자는 1년 여의 하드코어한 노동에 못견뎌 호텔화장실에서 벽에 X를 칠하고 미쳐버렸다는 얘기도 돌았다.

2004 년 미국 텍사스로 폰개발 출장 시 인근 대만 폰 제조사들도 있어서 대만 개발자들을 근처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는 9시 출근 밤 12시 퇴근하는데, 그들은 5시 퇴근해서 근처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예전 미국 출장 때 미국 회사의 개발자들이 5시 퇴근 하면서, 저녁 먹으러 가는 우리 볼 때의 눈빛, 다 퇴근해 텅 빈 건물에서 매일 새벽 1시까지 일하다 퇴근 하는 우릴 바라보는 그 백인 할아버지 경비원의 눈빛, 잊을 수가 없다.

현지의 한국인 미국 영주권자 시민권자들은 5시 퇴근하는데, 한국에서 출장 온 우린 왜 매일 새벽 퇴근인지. 금요일 오후 3시만 되면 파티 복장과 반바지에 런닝화 신고 나타나는 사람들보며 우린 왜 저렇게 될 수 없을까 생각했다. 내 미래, 5년이 지나고, 8년, 1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이 나라와 이 업계를 떠나서라도 찾아 가겠다.

IT 개발자. 그만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