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9월 13, 2005

바람꽃



1997 년 9월 3일. 베트남 항공기가 캄보디아의 프놈펜 근처에 추락했다. 탑승자 65명 전원이 사망했다. 한국인도 21명이 포함됐다. 사고가 나자 부랴부랴 달려온 이들이 있었다. 캄보디아에 사는 한인 동포였다.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불에 타 새카맣게 오그라든 시신 등. 차마 눈뜨고 못 볼 참혹한 현장이었다.

그러나 동포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한국인 시신'을 수습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데 어떻게 한국인 여부를 판별했을까. "속옷이나 양말을 보고 '백양' 또는 '쌍방울' 상표가 붙어 있으면 일단 한국인으로 간주했다." 동포 김문백씨의 말이었다.

당시 취재차 현장에 갔던 기자는 시신에 몰려드는 파리떼를 쫓으며 '21구의 한국인'을 지키고 있는 동포들을 보고 왈칵 눈물이 솟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다가설 용기조차 나지 않는 처참한 주검들. 그러나 이들은 '동포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에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외 국 거주 한인을 재외 동포라고 한다. 교포.교민이라고도 하지만 최근엔 재외 동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중국의 조선족 작가 허련순은 재외 동포를 '바람꽃'이라고 불렀다. 바람이 불면 그에 실려 정처없이 떠다니다 바람이 멈춘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뜻에서다.

외 교통상부 발표에 따르면 이 바람꽃은 1월 현재 173개국, 663만8338명에 달한다. 1863년 두만강 건너 러시아령 포시에트 항구로 한인 농민 13호가 이주한 게 그 시작이다. 이후 142년 만에 남북한 인구의 10% 가까운 수가 외국에 뿌리를 내렸다.

동 포는 늘 모국에 힘이 되곤 했다. 97년 외환위기 때 재일 동포가 780억 엔을 지원했다. 제주도의 명물인 귤도 재일 동포가 묘목을 갖다줬다. 60년대 경제개발의 밑거름이 된 독일 차관 도입은 '인질 이민'의 결과였다. 독일은 도대체 한국의 무얼 보고 돈을 꿔주느냐고 따졌다. 정부는 결국 간호사와 광원을 '담보'로 제공하고 1억4000만 마르크를 빌렸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한인 2500여 명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거의 전 재산을 잃었다. 피해액이 1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젠 우리가 정성을 모아 보낼 때다. 뉴올리언스의 바람꽃을 이대로 꺾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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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유상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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